삶과 마음

희귀 질환으로 살아간다는 것: 사회적 시선과 대처법

신경 섬유종 진단 과정 및 극복 스토리 2025. 5. 26. 19:24

 

희귀 질환으로 살아간다는 것

– 사회적 시선과 그에 대한 대처법

희귀 질환이라는 단어는 듣는 순간부터 생소하고 낯섭니다.
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렇습니다.
신경섬유종(NF1)처럼 피부에 결절이 생기거나 외형 변화가 나타나는 질환은
‘눈에 보인다는 이유만으로’ 더 많은 오해와 시선을 불러옵니다.

정작 가장 어려운 건, 병 그 자체보다 사람들의 반응과 말들입니다.
이 글은 희귀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겪게 되는 사회적 현실과 감정,
그리고 그것에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기록하고자 합니다.


1. “왜 그런 게 생겼어?” –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

질문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들어옵니다.

  • “이거 피부병이에요?”
  • “어릴 때 화상 입으셨어요?”
  • “전염되는 거예요?”
  • “어디서 다치셨어요?”

대부분의 질문은 악의가 없습니다.
하지만 그 무심함은, 때로 환자에게는 날카로운 상처가 됩니다.

저 역시 처음 피부 결절이 눈에 띄기 시작했을 때,
사우나, 수영장, 피부가 노출되는 활동이 갑자기 불편해지고, 시선이 두려워졌습니다.
‘굳이 설명해야 하나?’, ‘말 안 하면 오해할까?’
이런 감정이 쌓이면, 자연스레 회피하게 되고, 스스로를 감추게 됩니다.


2. ‘희귀 질환자’라는 사회적 낙인

우리 사회는 눈에 띄는 것, 다른 것을 경계하거나 동정하거나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.
희귀 질환 환자는 ‘병이 있는 사람’이라는 인식 외에

  • ‘불쌍한 사람’
  • ‘관리 못한 사람’
  • ‘사회적으로 제약 있는 사람’
    같은 **낙인(label)**을 무의식적으로 받기도 합니다.

특히 구직, 연애, 사회적 관계에서 이런 시선은
자존감을 가장 강하게 흔드는 요소가 됩니다.


3. 숨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?

그럼에도 불구하고,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.
저는 ‘이 병을 숨기는 삶’과 ‘이 병을 인정하는 삶’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.

제가 배운 교훈은 이렇습니다:

  • 정확하게 알린다면, 시선은 줄어든다.
    → 설명 없이 보이면 오해를 낳지만,
    → 간단하게 설명하면 대부분 이해하려 한다.
  • 숨기는 건 나 자신을 더 갉아먹는다.
    → 회피는 오히려 자기혐오로 이어지기 쉽다.
  • 용기가 ‘공감’을 부른다.
    → 오픈했을 때,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보다 ‘연대’를 표현한다.

4. 말하는 방식이 중요하다: 내가 나를 설명하는 법

환자임을 밝히는 순간, 듣는 사람은 당황합니다.
그런 상황에서는 ‘말하는 방식’이 매우 중요합니다.

추천하는 설명법:

  • “희귀 질환이에요. 유전성이고, 전염되거나 위험한 건 전혀 아니에요.”
  • “외형적으로 보이긴 하지만,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은 없어요.”
  • “잘 모를 수 있어요. 그래서 설명하는 거예요.”

3문장 정도로 차분하게 설명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편견을 걷어냅니다.


5. 관계에서의 솔직함이 건강하다

가까운 친구, 연인, 직장 동료에게 자신의 질환을 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.
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숨기면 숨길수록 불편함과 거리감이 커집니다.

실제 제 경험:

  • 친구에게 털어놨더니 오히려 “그동안 혼자 알게 돼서 미안했다”고 했습니다.
  • 연인에게는 미리 설명했더니 “이게 이유가 돼서 멀어질 것 같진 않다”고 말해줬습니다.
  • 직장 동료에게는 “가끔 병원 검진이 필요하다”고 말하니 배려받았습니다.

‘나를 알리는 용기’는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됩니다.


6. 스스로를 지키는 환경 만들기

희귀 질환 환자에게는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매우 중요합니다.
그걸 위해 필요한 건 **물리적 치료보다도 ‘정서적 지지 환경’**입니다.

할 수 있는 일:

  • 온라인 환우 커뮤니티 참여 (신경섬유종 환자 카페, 희귀질환 포럼 등)
  • 건강보험공단, 보건소 등 복지 제도 정보 확보
  • 유전자 상담, 심리 상담, 정신건강의학과 연계
  • 가족/친구/상담사 중 1명만이라도 정기적으로 이야기할 사람 확보하기

사람은 ‘이해받는 순간’ 가장 회복에 가깝습니다.


7. “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”

지금 저는

  • 정기적인 병원 검진을 받고
  • 필요한 경우 간단히 제 병에 대해 설명하며
  • 일도 하고, 사람도 만나고, 여행도 다니고 있습니다.

처음 진단받았을 때 가졌던 두려움은 여전히 잊을 수 없습니다.
하지만 그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, ‘감당할 수 있게’ 바뀐 것 같습니다.

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도,
자신만의 속도로 조금씩 감당해 나가면 됩니다.


8. 결론: 질환은 정체성이 아니라, 일부일 뿐이다

희귀 질환은 삶의 조건 중 하나일 뿐,
내 전부도 아니고, 내가 만들어낸 문제도 아닙니다.
사회는 완벽하지 않지만, 우리가 사회 속에서 ‘나’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합니다.

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.
단지,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사람일 뿐입니다.